해방 후 돌아가지 않은 잔류 왜구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변천 (1882 ~ 1945) - 서울역사편찬원
이처럼 토지수용을 통해 형성된 신용산의 시가지는 [그림 5]와 같이 지금의 후암동 및 용산동 2가의 해방촌 일대에 해당하는 吉野町(①, ②)과 三坂町(④)을 제외하면, 어느 곳이든 간에 일본인 인구의 절대적 우세를 보여준다. 특히 남대문에서 한강을 향해 곧게 뻗은 漢江通(지금의 한강대로)의 양편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인구 격차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조선인 인구 자체가 희박하여 거의 완전한 일본인 사회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전체 필지 수 가운데 73.4%를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 면적은 실상 11%에 지나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면 용산 지역 토지의 약 90%를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셈이다.
‘해방 후 왜구 1만명 이상 남았을 것’ 증언 나와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신분을 숨기고 한국인으로 변신한 이들이 어쩌면 대한민국 정치, 경제, 법조계, 언론 등을 장악하고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오히려 숨죽이고 숨어있다가 소위 민주화되면서 정권이 5년마다 바뀌는 것을 알고 친일파 정권을 세우기 위해 일본인 극우세력과 연대하여 공작에 나섰다. “일본국가기본문제연구소”가 뉴라이트와 관련된 대표적인 일본 극우단체다. 그 결과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어 결국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이 집권하는 동안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불가역적인 짓”을 미국을 끼고 신속하게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근간을 허무는 잔류 왜구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일제라는 집단이 우익[Right]이었으니, 그 후손을 뉴라이트(New Right)이라 불러도 무방하지만, 이것들은 뉴트리아 같은 외래종이라 토착왜구라 부르는 것이 맞다.